약보다 먼저 처방되는 운동… 혈압을 낮추는 '움직임'의 과학

규칙적인 운동은 수축기 혈압을 5~10mmHg가량 낮춰 고혈압 예방과 관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유산소 운동과 등척성 운동을 중심으로, 혈압 관리에 효과적인 운동법과 주의해야 할 점을 정리했다.

가정용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는 모습

「가정용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는 모습. 사진=Unsplash」

고혈압은 특별한 증상 없이 심장과 혈관을 조용히 망가뜨려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국내 성인 상당수가 고혈압이거나 그 전 단계에 해당하지만, 초기에는 불편함이 없어 관리를 미루기 쉽다. 그런데 혈압 관리에서 약물만큼, 때로는 약물보다 먼저 권고되는 것이 있다. 바로 규칙적인 운동이다. 주요 고혈압 진료 지침들은 생활습관 개선, 그중에서도 운동을 혈압 관리의 1차 전략으로 제시한다.

운동이 혈압을 낮추는 원리는 명확하다.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면 혈관 안쪽 벽(내피)의 기능이 좋아져 혈관이 잘 이완되고, 말초 혈관의 저항이 줄어든다. 심장은 한 번에 더 많은 피를 효율적으로 내보내게 되고, 안정 시 심박수와 혈압이 함께 내려간다. 꾸준히 운동한 사람은 수축기 혈압이 평균 5~10mmHg가량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부 혈압약 한 알의 효과에 견줄 만한 수치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걷기, 자전거, 수영 같은 유산소 운동이다. 약간 숨이 차지만 대화는 가능한 정도의 강도로, 하루 30분 이상, 주 5회 이상이 표준 권고다. 한 번에 30분을 채우기 어렵다면 10분씩 세 번에 나눠도 효과가 있다. 중요한 것은 강도보다 빈도다. 주말에 몰아서 하는 격렬한 운동보다, 매일 꾸준히 하는 가벼운 운동이 혈압 관리에는 훨씬 유리하다.

최근에는 등척성 운동(isometric exercise)이 주목받고 있다. 근육의 길이 변화 없이 힘을 유지하는 운동으로, 벽에 등을 대고 앉은 자세를 버티는 '월 싯(wall sit)'이나 악력기를 일정 강도로 쥐고 버티는 핸드그립 운동이 대표적이다. 여러 연구를 종합한 분석에서 등척성 운동은 유산소 운동 못지않게, 경우에 따라 그 이상으로 혈압을 낮추는 효과를 보였다. 월 싯은 2분 버티기와 2분 휴식을 4회 반복하는 방식으로, 주 3회 정도가 권장된다.

근력운동도 혈압 관리에 도움이 되지만 방법이 중요하다. 무거운 중량을 드는 순간 숨을 참는 '발살바 호흡'은 혈압을 순간적으로 크게 치솟게 하므로 피해야 한다. 가벼운 무게로 횟수를 늘리고, 힘을 줄 때 숨을 내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안전하다. 근력운동은 유산소 운동을 대체하기보다 주 2~3회 보조적으로 병행하는 것이 좋다.

운동 시간대와 환경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혈압은 잠에서 깬 직후 급격히 오르는 경향이 있어, 기상 직후의 갑작스러운 고강도 운동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충분히 몸을 깨운 뒤 준비운동으로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탈수가 혈압 변동을 키울 수 있으므로 운동 전후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고, 한낮보다는 아침저녁 서늘한 시간대를 택하는 것이 좋다.

운동만큼 중요한 것이 함께 가는 생활습관이다. 나트륨 섭취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는 식사, 체중 감량, 절주, 금연, 충분한 수면은 운동의 혈압 강하 효과를 배로 만든다. 특히 체중이 1kg 줄면 혈압도 약 1mmHg 내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운동과 식습관 개선을 병행하면 시너지가 크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이미 혈압이 상당히 높은 상태(예: 160/100mmHg 이상)이거나 심장질환, 당뇨병 등 동반 질환이 있다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해 운동 강도와 종류를 정해야 한다. 운동 중 가슴 통증, 심한 어지럼증, 호흡곤란이 나타나면 즉시 중단하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 혈압 수치가 높거나 증상이 있다면 자가 관리에만 의존하지 말고 전문의의 진단과 처방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