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땐 짜릿, 쉴땐 불안…성실한 당신, OOO입니다

일중독, 정서적 압박 커지며 번아웃 불러 성과는 내지만 정신적 질병 위험도 커져 휴식은 ‘유지보수’ 호흡법으로 긴장 풀고 멍때리기나 근무태도·방식 변화로 회복을

과다한 업무로 흥분감과 전율을 느끼고, 집에서도 일을 놓지 못하면 ‘일강박’ 증상일 수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과다한 업무로 흥분감과 전율을 느끼고, 집에서도 일을 놓지 못하면 ‘일강박’ 증상일 수 있다. 

직장인 이모씨는 프로젝트가 몰리는 시기가 되면 오히려 생기가 돈다. 마감이 다가오면 심장이 빨리 뛰고 뇌가 팽팽하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동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머릿속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으로 일할 때 짜릿한 흥분과 전율을 느낀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나고 평온한 휴식기가 찾아오면 불안이 시작된다. 퇴근 후에도 업무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쉬는 날에도 일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이를 ‘책임감’이나 ‘성취욕’이라고 말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것이 뇌가 휴식 방법을 잊은 위험한 상태, 즉 ‘일강박’과 ‘심리적 분리 실패’라고 지적한다.

 

“일이 많아 번아웃?”…원인은 ‘일중독·정서적 스트레스’

업무가 많다고 해서 모두가 번아웃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임세환 가톨릭대학교 연구자가 올해 발표한 ‘직무요구가 번아웃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과도한 업무량은 그 자체로 번아웃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 ‘일중독’과 ‘정서적 스트레스’라는 두 개의 다리를 건너면서 악화한다.

일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이를 해결하려고 더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일중독’ 상태가 되고, 이 과정에서 불안, 분노, 우울과 같은 ‘정서적 스트레스’가 커진다. 임 연구자는 “일중독이 정서적 스트레스를 매개해 번아웃에 이르는 경로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며 “특히 일하지 않을 때 불안해지는 강박적 성향이 우울감과 직결된다”고 분석했다.

 

성과는 내지만 정신적 질병 뿌리 깊어져

‘일즐거움’과 ‘일강박’은 성과로는 비슷하지만 ‘번아웃’이 따라온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일즐거움’과 ‘일강박’은 성과로는 비슷하지만 ‘번아웃’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일중독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 2023년 정행로·윤미영·양동우 연구자가 대한경영학회지에 이에 관해 분석했다. ‘직장인의 일중독이 직무 성과와 창업 의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증연구: 혁신행동의 매개효과 중심’에 따르면, 이들은 일중독을 ‘일강박(Work Drive)’과 ‘일즐거움(Work Enjoyment)’으로 구분했다.

연구 결과 내적 압박으로 일하는 ‘일강박’과 일을 즐기는 ‘일즐거움’ 모두 단기적으로는 직무 성과와 혁신 행동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A씨가 느끼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장기적으로 볼 때 휴식 없이 강박적으로 일하는 것은 직무 수행 저하와 전반적인 악화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성과라는 달콤한 열매 뒤에 ‘번아웃’이라는 나쁜 뿌리가 자라는 셈이다.

 

“퇴근 후 업무 생각 멈춰야”… ‘심리적 분리’가 해법

휴일에 몸이 아프거나 불안해지는 현상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법은 단순히 ‘오래 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쉬느냐’에 있다. 김성용·안성익 연구자가 2021년 대한경영학회지에 발표한 ‘자기 주도 직무설계(Job Crafting) 행위가 일중독에 미치는 영향에서 심리적 분리의 조절 효과’에서 이에 대해 분석했다.

심리적 분리란 업무 시간 외의 일에 관한 생각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온전히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 연구 결과, 퇴근 후 심리적 분리가 잘 되는 사람은 자기주도적으로 업무를 설계할 때 긍정적인 ‘일즐거움’이 크게 높아지지만, 부정적인 ‘일강박’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심리적 분리가 되지 않아 퇴근 후에도 일 걱정을 하는 사람은 ‘일강박’ 수치가 높아졌다. 즉, 스위치를 완전히 끄지 못하면 우리 뇌는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휴식은 ‘정지’가 아니라 ‘유지보수’

세 연구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결론은 명확하다. 현대인의 피로와 불안은 ‘성실함’의 증거가 아니라 뇌의 회복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신호다. 달리는 자동차의 엔진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가 필요하듯 과열된 뇌를 식히는 능동적 휴식 기술이 필요하다. ‘잘 쉬기’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가이드를 세 단계로 정리했다.

 

미 해군 특수부대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박스 호흡법’.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제미나이

미 해군 특수부대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박스 호흡법’. 

◆1단계, ‘박스 호흡법’으로 급한 불 끄기=업무 중 갑작스러운 불안감이나 압박감이 밀려올 때, 뇌는 투쟁-도피 상태로 전환돼 교감신경이 폭주한다. 이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물리적으로 부교감신경(이완 신경)을 깨우는 것이다.

미 해군 특수부대가 극한의 공포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박스 호흡법’을 추천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4초간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4초간 숨을 참는다. 다시 4초간 입으로 천천히 내뱉고 4초간 숨을 멈춘다. 이 과정을 서너 차례만 반복해도 요동치던 심박수가 가라앉고 뇌에 ‘이제 안전하다’는 신호가 전달된다.

무의식적으로 긴장된 근육을 푸는 ‘점진적 근육 이완법’도 효과적이다. 주먹을 5초간 꽉 쥐었다가 툭 하고 힘을 푸는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신체적 긴장을 완화해 뇌의 각성 수준을 낮출 수 있다.

◆2단계, 멍때리기와 퇴근 의식으로 뇌 쉬어주기=퇴근 후에도 업무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심리적 분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성용·안성익 연구자는 “퇴근 후 심리적 분리가 잘 되는 사람은 자기 주도적으로 업무를 설계할 때 긍정적인 일즐거움이 높아지지만, 부정적인 일강박은 낮아진다”고 소개했다. 업무와 나를 분리하는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업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이를 위해 네덜란드식 휴식법인 ‘닉센’을 제안한다. 닉센은 목적 없이 아무것도 안 하기를 뜻한다. 하루 5분 창밖을 보거나 벽을 보며 뇌를 공회전시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집에 오자마자 서랍에 넣어두거나, 잠옷으로 갈아입는 행위로 뇌에게 ‘업무 종료’를 선언하는 퇴근 의식을 만드는 것도 좋다.

 

‘잡 크래프팅'은 자신의 의식으로 주도권을 잡고, 일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잡 크래프팅'은 자신의 의식으로 주도권을 잡고, 일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3단계, 해야 하는 일에서 하고 싶은 일로 ‘잡 크래프팅’=마지막으로 일하는 태도와 방식을 바꾸는 ‘잡 크래프팅’이다. 거창한 계획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업무 방식이나 범위를 자신의 강점에 맞춰 미세하게 조정해보자. 업무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이 주도권을 잡아야 뇌가 덜 지친다.

예를 들어 보고서 작성 순서를 내가 편한 방식으로 바꿔보자. 동료와 이야기하면서 협업 방식을 제안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대신 동료를 지원하는 식으로 업무를 바꿔보며 새롭게 일하는 방식은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국 휴식은 게으름이나 멈춤이 아닌, 다음 도약을 위한 정교한 유지보수 과정이다.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쉴 때조차 죄책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지금 더 잘 쉬는 법을 연습해야 할 때다. 지금 당장 4초간 숨을 들이마시는 것부터 시작하며 마음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을 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