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상속받은 만큼 세금 낸다... 정부 "2028년부터 유산취득세 전환"

기획재정부 정정훈 세제실장(왼쪽 세 번째)이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완수 상속세개편팀장, 김건영 조세개혁추진단장, 정 실장, 김병철 재산소비세정책관./연합뉴스

기획재정부 정정훈 세제실장(왼쪽 세 번째)이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완수 상속세개편팀장, 김건영 조세개혁추진단장, 정 실장, 김병철 재산소비세정책관./연합뉴스

정부가 오는 2028년부터 상속세 구조를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간 총상속액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부과하면 배우자와 자녀 등 유족이 다 같이 납부했는데, 3년 후부터는 유족마다 실제로 받은 상속액을 기준으로 각자 세금을 내는 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공제 한도도 늘려, 세 부담도 대폭 줄여주기로 했다. 다만 상속세법 전반을 뜯어고쳐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입장을 내는지에 따라 실제 전환 여부와 시점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5월 유산취득세 법률안 제출

12일 기획재정부는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오는 5월 중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위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법률안이 의결될 경우 시행 시점은 2028년이다. 앞서 작년 11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상반기 중 유산취득세 전환을 위한 법안을 내겠다고 했는데, 이에 맞춰 구체적인 도입 방안과 법률안 제출 시점을 공개한 것이다.

유산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전체 상속재산에 대해 세금을 매기고, 상속을 받는 배우자와 자녀 등이 공동으로 납세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을 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실제 상속받은 재산만 따져서 각자 세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기재부는 ‘받은 만큼 낸다’는 조세 정의에 부합한다며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을 추진해왔다.

기재부는 유산취득세 방식에 따라 상속세를 개별 상속인마다 걷되, 상속인 중 한 사람이 이미 재산을 다 썼거나 외국에 거주하는 등 세금을 걷기 어려운 경우 등에 제한적으로 다른 상속인들에게 연대 납세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상속인과 피상속인이 모두 비거주자(외국인)일 경우에만 국내 소재 상속 재산에 대해 과세하고, 어느 한 쪽이라도 거주자(내국인)일 경우 전 세계 모든 상속 재산에 대해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자녀 공제 5000만원→5억원, 배우자는 최소 10억원 공제

이날 정부는 유산취득세 개편안에 맞춰 공제 방식 개편안도 내놨다. 현재 유산세 방식에서는 전체 상속 재산에서 배우자 공제로 최소 5억원에 일괄 공제로 5억원을 받거나, 배우자 공제를 받고 기초 공제 2억원에 자녀 1명당 5000만원씩 공제를 받는 방법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이때 배우자 공제는 배우자가 실제로 상속받은 금액이 5억원보다 적어도 5억원까지는 무조건 공제가 적용된다. 만일 배우자가 상속받은 재산이 5억원 이상이면, 30억원 한도 내에서 법정 상속분(민법상 전체 상속 재산 중 배우자 몫으로 인정되는 재산)만큼 공제해준다. 결국 자녀가 6명(1명당 5000만원씩 공제를 받으면 총 3억원)을 넘지 않는 한 일괄 공제를 받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현행 상속세 공제 한도는 기본 10억원으로 인식된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방식에서는 공제가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점을 고려해, 자녀 공제를 현재의 10배 수준인 5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배우자 공제는 상속재산 10억원까지는 법정 상속분과 관계 없이 실제로 받은 상속분만큼 공제해주고, 10억원을 넘는 경우에는 30억원 한도 내에서 법정 상속분만큼 공제해주기로 했다.

일례로 배우자와 자녀 2명이 20억원을 배우자가 10억원, 자녀가 각각 5억원씩 상속받은 경우 지금까지는 배우자 상속액이 법정 상속분(8억5714만원)을 초과하고, 자녀들이 받은 상속 재산도 일괄 공제(5억원)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2억원가량의 세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면 배우자와 자녀 모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제액이 이 정도 수준은 돼야 세 부담을 줄인다는 유산취득세 개편 취지를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수는 연 2조원↓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면서 공제를 높인 덕분에 연간 걷히는 상속세 수입은 2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공제 확대로 1조7000억원 정도의 세수 감소 효과가 예상되고, 유산취득세 도입으로 개별 상속인이 부담하는 실효세율이 낮아지면서 3000억원 정도의 세수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걷힌 상속세(8조5000억원)의 약 24% 수준이다. 공제가 대폭 늘어나며 과세 대상도 2023년 6만8000명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상속세를 걷는 24국 가운데 유산세 방식을 채택한 나라는 한국과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곳뿐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인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다만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경우 개별 상속인이 실제로 재산을 얼마나 상속받았는지 일일이 추적해야 해, 행정 절차는 더욱 복잡해진다. 게다가 유산취득세가 도입되면 여러 명이 상속받을 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위장 분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크다. 정부는 위장 분할이 적발될 경우 추징할 수 있는 ‘부과 제척 기간’이 현행은 10년인데, 위장 분할 혐의가 발견되면 이를 15년으로 연장하는 방식으로 감시 수단을 강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