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력 운동 기구를 쥔 손. 사진=Unsplash」
잘 열리던 유리병 뚜껑이 어느 날부터 버겁게 느껴진다면, 단순히 뚜껑이 꽉 닫힌 탓만은 아닐 수 있다. 물건을 쥐고 비틀고 들어 올리는 손아귀 힘, 즉 악력은 나이가 들면서 조용히 줄어드는 대표적인 신체 능력이다. 문제는 악력이 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악력은 팔과 어깨, 몸통까지 이어지는 전신 근육이 함께 만들어내는 힘이어서, 악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몸 전체의 근력이 줄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악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측정이 간단하면서도 건강 상태를 폭넓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여러 대규모 연구에서 악력이 낮은 사람일수록 심혈관질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위험과 사망 위험이 높은 경향이 꾸준히 관찰돼 왔다. 그래서 악력은 혈압이나 혈당처럼 몸 상태를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 이른바 활력 징후처럼 다뤄지기도 한다. 병원에서도 근감소증을 진단할 때 악력 측정을 기본 검사로 활용한다.
내 악력이 어느 수준인지 궁금하다면 일상 속 신호부터 살펴보자. 물이 가득 든 2L 페트병을 한 손으로 들어 따르기가 버겁거나, 젖은 수건을 힘껏 짜기 어렵거나, 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몇 분 걷는 것이 힘들다면 악력 저하를 의심해볼 수 있다. 보건소나 체력인증센터에 비치된 악력계를 이용하면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인 남성은 28kg, 여성은 18kg 아래로 떨어지면 근감소증 위험 신호로 본다.
다행히 악력은 훈련에 잘 반응하는 능력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수건 짜기 운동이다. 마른 수건을 두 손으로 잡고 빨래를 짜듯 5초간 힘껏 비튼 뒤 풀어주기를 좌우 방향으로 10회씩 반복한다. 테니스공이나 말랑한 그립볼을 5초간 꽉 쥐었다 놓는 동작을 한 손에 10~15회씩 하는 것도 좋다. 하루 두세 차례,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기르고 싶다면 매달리기와 들고 걷기를 추천한다. 철봉에 10~30초간 매달리는 동작은 악력과 함께 어깨 유연성까지 길러준다. 양손에 아령이나 물병을 들고 허리를 편 채 30초~1분간 걷는 이른바 파머스 워크는 악력, 코어, 하체를 한 번에 자극하는 효율적인 전신 운동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무게로 시작해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범위에서 서서히 무게와 시간을 늘리는 것이 요령이다.
주의할 점도 있다. 악력 운동은 짧고 강하게 힘을 쓰는 동작이 많아, 혈압이 높은 사람은 숨을 참은 채 힘을 주는 습관을 피해야 한다. 힘을 줄 때 숨을 내쉬고, 힘을 뺄 때 들이마시는 리듬을 지키면 혈압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손목이나 팔꿈치에 통증이 있을 때 무리하게 쥐는 운동을 반복하면 힘줄에 염증이 생길 수 있으니 강도 조절이 필요하다.
악력은 하루아침에 늘지 않지만, 꾸준히 자극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좋아진다는 점이 분명한 능력이다. 오늘 수건 한 장으로 시작한 작은 운동이 10년 뒤 병뚜껑을 여는 힘, 넘어질 때 난간을 붙잡는 힘, 손주를 안아 올리는 힘으로 돌아온다. 손끝의 힘을 지키는 일이 곧 독립적인 일상을 지키는 일이다.
다만 특별한 이유 없이 악력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한쪽 손만 힘이 빠지는 경우, 손 저림이나 통증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에는 신경이나 관절 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 증상이 심하거나 지속된다면 자가 운동에 의존하지 말고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